아몬드나 호두, 땅콩을 팬에 살짝 볶으면 고소한 냄새가 확 살아나죠. 그래서 눅눅해진 견과류도 센 불에 바짝 볶아서 먹는 경우가 있는데요. 문제는 온도가 너무 높고 가열 시간이 길어질수록 원하지 않는 물질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중 하나가 흔히 ‘당독소’라고 부르는 최종당화산물(AGEs)이에요. 견과류뿐 아니라 단백질과 지방이 들어 있는 여러 식품을 높은 온도의 건열로 조리할 때 더 많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볶은 견과류를 먹으면 바로 혈관에 문제가 생긴다는 식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요.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와 실제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따로 구분해서 보는 게 맞습니다.
견과류를 볶을 때 생기는 당독소란?
당독소라고 불리는 최종당화산물, 영어로는 AGEs(Advanced Glycation End Products)라고 합니다. 식품 속의 당과 단백질 등이 열을 받으면서 반응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여러 화합물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에요.
특히 굽기, 볶기, 튀기기처럼 수분이 적은 상태에서 높은 온도로 조리하면 이런 물질이 더 많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노릇노릇하게 만들면서 맛과 향을 만들어내는 마이야르 반응과도 관련이 있어요.
고소한 향과 갈색 색깔도 이 과정에서 생기기 때문에 마이야르 반응 자체를 무조건 나쁜 반응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너무 높은 온도로 오래 가열하는 조리 습관은 줄이는 편이 낫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쉬워요.
온도가 높을수록 당독소가 늘어날 수 있어요
실제로 생아몬드와 볶은 아몬드를 비교한 연구에서는 로스팅 과정에서 CML, CEL, 피랄린 같은 여러 종류의 AGEs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땅콩을 이용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관찰됐어요. 160~200℃ 범위에서 볶는 온도와 시간이 증가할수록 조사한 AGEs와 일부 열 반응 생성물이 함께 증가했습니다.
즉 견과류를 볶는다고 무조건 문제가 된다는 얘기보다는 지나치게 높은 온도와 긴 가열 시간이 AGEs 형성을 늘리는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게 핵심이에요.
쉽게 기억하면
센 불에 오래 볶아서 진하게 갈색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가볍게 볶는 쪽이 낫습니다.
볶은 견과류가 혈관에 나쁘다는 뜻일까?
여기서는 조금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어요. 식품으로 섭취하는 AGEs가 체내의 산화 스트레스나 염증과 관련될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들이 있는 건 맞습니다.
특히 당뇨병이나 비만 등 대사질환 위험이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일부 연구에서는 식이 AGEs를 줄였을 때 염증 지표나 인슐린 감수성에 변화가 관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에게 볶은 견과류를 먹는 것이 직접적으로 혈관질환을 일으킨다고 단정할 정도의 근거는 아직 부족합니다. 섭취한 AGEs가 얼마나 흡수되고 대사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어요.
따라서 “볶은 견과류는 혈관에 나쁘니 먹지 말자”보다는 견과류를 지나치게 높은 온도에서 오래 볶는 습관을 굳이 만들 필요는 없다 정도가 현재 근거에 더 가까운 설명입니다.
집에서는 센 불보다 약한 불로 볶아요
집에서 견과류를 데울 때는 센 불에 짧게 태우듯 볶기보다 약한 불이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데우는 방법이 좋아요. 고소한 향이 올라오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팬을 너무 달군 뒤 견과류를 넣으면 겉은 순식간에 갈색으로 변하는데 속은 제대로 데워지지 않을 수 있어요. 한쪽만 타기도 쉽고요.
볶는 동안에는 계속 뒤집어주면서 검게 타는 부분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이미 볶아서 판매되는 견과류라면 굳이 집에서 다시 높은 온도로 오래 가열할 이유도 없어요.
생견과와 볶은 견과, 무엇을 고를까?
“그러면 무조건 생견과만 먹어야 하나?” 싶은데 그렇게 단순하게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볶는 과정은 견과류의 고소한 향과 식감을 좋게 만들고 제품에 따라 보관성과 기호도에도 영향을 줍니다.
반면 고온 로스팅 과정에서는 AGEs뿐 아니라 견과류 종류와 조건에 따라 다른 열 반응 물질도 늘어날 수 있어요. 그래서 강하게 볶아 진한 갈색을 낸 제품보다는 과하게 로스팅되지 않은 제품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생견과를 선택한다면 제품에 표시된 섭취·보관 방법을 확인하세요. 견과류마다 가공 방식과 권장 섭취 방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생것이 항상 더 건강하다’고 일반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견과류 먹을 때 함께 기억할 것
견과류를 건강하게 먹는다고 하면 볶는 온도만 신경 쓰기 쉬운데요. 실제로는 제품을 고르고 보관하는 과정도 같이 보는 게 좋습니다.
- 센 불에서 검게 될 정도로 오래 볶지 않기
- 이미 볶은 제품은 불필요하게 다시 고온 가열하지 않기
- 가공 제품은 나트륨과 첨가당 표시도 확인하기
- 개봉한 견과류는 열과 습기, 공기를 피해 보관하기
- 냄새가 오래된 기름처럼 변했거나 맛이 이상하면 먹지 않기
견과류 자체를 피할 이유는 없어요. 중요한 건 한 가지 성분을 무서워하기보다 지나친 고온 조리를 피하고 제품을 적절히 보관해서 먹는 것입니다.
견과류와 당독소, 헷갈리는 부분 정리해볼게요
볶은 아몬드는 먹으면 안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로스팅하면 일부 AGEs가 늘어날 수 있지만 이를 근거로 볶은 아몬드 자체를 위험한 식품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너무 높은 온도로 오래 볶는 조리법을 피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게 적절합니다.
당독소가 들어 있는 음식을 먹으면 바로 혈관에 쌓이나요?
그렇게 단순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식이 AGEs 중 일부는 흡수될 수 있지만 흡수율과 체내 대사, 배설 과정이 복잡하고 사람의 질병 위험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는 계속 연구되고 있어요.
에어프라이어로 견과류를 데워도 될까요?
사용할 수 있지만 온도를 지나치게 높이고 오래 돌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볶은 견과류는 가볍게 데우는 정도로 끝내고, 색이 아주 짙어지거나 타지 않도록 상태를 확인하는 편이 좋아요.
견과류는 ‘태우듯 볶지 않는 것’부터 기억하세요
아몬드나 땅콩을 볶으면 당독소로 불리는 AGEs가 늘어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볶은 견과류를 전부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집에서 견과류를 더 고소하게 먹고 싶다면 센 불부터 켜기보다는 약한 불로 가볍게 데워보세요. 고소한 향이 충분히 올라왔는데 굳이 더 짙은 갈색이 될 때까지 볶을 이유는 없거든요.
그리고 당독소 하나만 보고 견과류 자체를 나쁜 음식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과도한 고온 조리를 줄이고, 탄 부분 없이 적당히 조리해서 먹는 것. 이 정도가 일상에서 적용하기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에요.
